맘카페나 단톡방에서 “이 첨가물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글을 보고 냉장고를 뒤진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불과 몇 달 전에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자극적인 글 하나가 멀쩡한 음식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심까지 퍼뜨리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습니다.
팩트체크: 아질산나트륨은 정말 독극물인가
제가 읽은 그 글의 핵심 주장은 이랬습니다. “햄과 소시지에 들어가는 아질산나트륨(Sodium Nitrite)이 해외에서는 독극물로 지정돼 쓰이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만 규제도 없이 마구 쓰고 있다”는 것이었죠. 아질산나트륨이란 육가공품의 색을 유지하고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존료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위험해 보이는 게 사실이고, 저도 처음엔 그냥 믿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화학을 전공한 친척 조카에게 물어봤더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질산나트륨은 유럽연합(EU)과 미국 FDA 모두 허용하는 식품 첨가물이며, 오히려 보툴리누스균(Clostridium botulinum) 억제를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툴리누스균이란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혐기성 세균으로, 이 균이 생성하는 독소는 식중독 중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꼽힙니다. 아질산나트륨 없이 햄을 만들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였죠.
국내 허용 기준도 생각보다 훨씬 엄격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아질산나트륨의 잔존량 기준은 식육가공품 기준 70mg/kg 이하로 관리됩니다. 이 수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설정한 일일 허용 섭취량(ADI)을 평생 매일 먹어도 안전한 양의 수백분의 일 수준에 불과합니다. ADI란 Acceptable Daily Intake의 약자로, 사람이 평생 매일 섭취해도 건강에 해롭지 않은 양을 뜻합니다. (출처: 식품안전나라)
제가 글을 공유하기 전에 이 사실을 먼저 찾아봤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해외에서는 금지됐다”는 단 한 줄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몸소 경험한 셈이었습니다.
불안 마케팅: 공포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뒤늦게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특정 첨가물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부각한 글 바로 아래에, 해당 성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친환경’ 제품 광고가 붙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구조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안 마케팅(Fear Marketing)입니다. 불안 마케팅이란 소비자의 공포심을 의도적으로 자극해 특정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을 말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유포해 대중을 불안하게 만든 뒤, 자사 제품을 ‘안전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식이죠. 조회수 수익을 노린 일부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논문의 극단적인 일부 결과만 짜깁기하거나, 수십 년 전 연구를 마치 최신 진실인 양 포장하는 방식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반적으로 ‘무방부제’, ‘무첨가’ 표시가 있으면 더 건강한 식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무방부제’는 방부제를 쓰지 않았다는 뜻이지, 모든 첨가물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방부제 대신 다른 방식으로 보존성을 확보하거나, 당류나 나트륨 함량이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표시를 보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 표시가 전체 맥락을 대표한다고 착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인터넷 식품 정보를 볼 때 저는 이제 이런 순서로 확인합니다.
-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출처가 명확한 기관 자료를 인용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 “절대”, “무조건”, “100% 독이다” 같은 단정적 표현이 있다면 일단 의심합니다.
- 해당 주장이 식약처, WHO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식 자료와 일치하는지 교차 검증합니다.
- 글 주변에 특정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나 링크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 정보가 몇 년도 기준인지, 최신 연구와 기준을 반영한 것인지 날짜를 봅니다.
이 다섯 단계를 거치면 선동성 글과 정보성 글이 꽤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번거로워 보여도 한 번 습관이 되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화학 이름이 어렵다고 위험한 게 아니다
제가 그날 가장 황당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친척 조카가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이 들어간 음식도 안 드세요?”라고 물었을 때였습니다. 아스코르브산이란 비타민 C의 화학명입니다. 식품 라벨에 ‘아스코르브산’이라고 적혀 있으면 무섭게 느껴지지만, 그냥 비타민 C를 뜻합니다. 저는 그 순간 제가 이름의 낯섦으로 위험도를 판단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레시틴(Lecithin)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시틴이란 달걀 노른자나 대두에서 추출한 천연 유화제로, 초콜릿이나 빵의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 쓰이는 성분입니다. 천연에서 유래한 성분이지만 라벨에서 보면 뭔가 화학물질처럼 느껴지죠. 일반적으로 식품 첨가물은 모두 인공 화학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천연 유래, 미생물 발효, 화학 합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름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다고 단정하는 건 근거가 없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란 미디어에서 접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분석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짜 정보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있습니다. 식품 분야는 건강, 특히 아이들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공포심이 가장 빠르게 퍼지는 주제입니다. 그만큼 미디어 리터러시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포데믹(Infodemic), 즉 부정확한 정보의 대규모 확산이 실제 보건 문제만큼 위험하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출처: WHO) 식품 괴담도 그 인포데믹의 일부입니다. 제가 단톡방에 무분별하게 글을 공유했을 때, 저도 그 확산의 일부가 됐던 거죠.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그날만큼 실감 난 적이 없었습니다.
정리하면, 식품 첨가물에 관한 인터넷 정보를 볼 때는 자극적인 제목보다 출처와 근거를 먼저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냉장고를 뒤지기 전에 식약처나 WHO 자료를 한 번만 찾아보는 습관이,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식품 안전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반드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를 직접 확인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