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색소(Food Colorant)가 들어간 식품은 무조건 몸에 나쁘다는 믿음, 혹시 지금도 갖고 계신가요? 저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막내 아이가 파란 혀를 들이밀며 웃을 때, 저는 이성보다 공포가 먼저 반응했으니까요.
파란 혀를 보고 깨달은 것, 색소는 정말 불량식품의 증거일까요
아이가 편의점에서 친구랑 사 먹고 돌아왔는데, 혀랑 입술이 온통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봉지를 낚아챘고, 파란색과 빨간색이 번쩍이는 수입 젤리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불량식품이 어디 있어, 다 아토피 원인이야!” 하며 아이를 혼내고 나머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주말에 아이들한테 마카롱을 구워주면서 원재료 표시를 무심코 들여다봤습니다. 적색 40호, 청색 1호. 제가 직접 구워준 마카롱에 아이한테 먹지 말라던 그 색소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먹이는 오렌지 주스에도, 마트 대기업 과자에도 색소는 다 있었습니다. 단지 색이 덜 튀었을 뿐이었죠.
그렇다면 파란 혀는 정말 위험 신호였을까요? 타르색소(Tar Dye)가 원인이었습니다. 타르색소란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얻은 원료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든 합성색소로,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사용을 허가한 종류에 한해서만 식품에 쓸 수 있습니다. 파랗게 물든 혀는 색소가 침과 반응해 일시적으로 착색된 것일 뿐, 몸속에 그대로 쌓인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걸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의 감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착색 공포를 키우는 진짜 오해, 색이 진할수록 더 위험한 건 아닙니다
색이 강렬할수록 색소가 더 많이 들어갔다고 느끼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식품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틀린 직관입니다. 착색력(Tinctorial Strength)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착색력이란 색소 한 단위가 얼마나 강한 색을 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착색력이 높은 색소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선명한 색을 만들어냅니다. 즉, 눈으로 보이는 색의 진함이 사용량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식품에 허용된 색소는 어느 정도까지 써도 되는 걸까요?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일일섭취허용량(ADI, Acceptable Daily Intake)입니다. ADI란 평생 매일 먹어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인정되는 하루 최대 섭취량으로, 독성 실험에서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은 용량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설정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허용된 색소는 이 ADI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양만 식품에 쓸 수 있도록 규제됩니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자연에도 색소는 넘쳐납니다. 비트의 붉은 색소인 베탈라인(Betalain), 강황의 노란 색소인 커큐민(Curcumin), 포도껍질의 보라 색소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모두 천연에서 얻는 색소 성분입니다. 안토시아닌이란 식물의 꽃, 열매, 잎에서 붉은색·보라색·파란색을 만들어내는 수용성 색소로, 항산화 효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연이라서 무조건 안전하고 합성이라서 무조건 위험하다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서야 식품 표시를 훨씬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색소가 들어간 식품을 고를 때 뭘 봐야 할까요? 저는 이제 이 순서대로 확인합니다.
- 당류(Sugar) 함량 — 색소보다 이것이 아이 건강에 직결됩니다
- 나트륨 함량 — 과자류는 의외로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 원재료명 — 색소의 종류와 함께 전체 성분 구성을 봅니다
- 알레르기 유발 성분 표시 — 특정 색소에 민감한 아이도 있습니다
- 소비기한 — 기본이지만 자주 놓치는 항목입니다
첨가물 기준이 있다면, 우리가 진짜 따져야 할 건 따로 있습니다
색소의 안전성 기준이 엄격하게 관리된다면, 색소가 들어간 식품을 무조건 멀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색소 자체는 기준 안에서 관리되지만, 색소가 많이 쓰이는 식품의 대다수가 고당류 가공식품이라는 점은 따로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색소가 위험해서 못 먹인다”가 아니라 “당이 너무 많아서 조절해야 한다”가 올바른 접근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자유당(Free Sugar) 섭취량을 총 에너지의 10% 미만으로 줄이고, 가능하면 5% 이하로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출처: WHO) 자유당이란 제조사가 식품에 첨가한 당과 꿀, 과일즙 등에 들어 있는 당을 합친 것으로, 자연 상태의 과일이나 채소에 존재하는 당과 구별됩니다. 색이 화려한 젤리나 사탕 한 봉지가 아이 하루 권장 당 섭취량을 훌쩍 넘기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제가 막내 아이 젤리 봉지를 쓰레기통에 던진 날, 진짜 문제는 파란색이 아니라 그 뒷면의 당류 수치였을지 모릅니다. 색깔이 주는 공포에 이성을 잃지 않으려면 결국 영양 성분표를 읽는 습관밖에 없다는 걸, 그날 이후로 저는 꽤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색소 유무만으로 식품의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것은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허용 기준 안에서 관리되는 첨가물 하나에 공포를 쏟는 대신, 당류와 나트륨 같이 실제로 건강에 영향을 주는 수치를 들여다보는 시선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집에 있는 과자 봉지 하나만 뒤집어 영양 성분표를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그게 막연한 불안을 줄이는 가장 실용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