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밀키트 떡볶이 뒷면을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던 적이 있습니다. 고추장 옆으로 괄호가 열리더니, 그 안에 또 괄호가, 그 안에 또 낯선 이름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거였습니다. “이게 뭐야, 나한테 뭔가를 숨기려는 거 아냐?” 싶었던 그 찝찝함, 저만 느낀 게 아닐 겁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복잡한 괄호는 속임수가 아니라 오히려 법이 소비자를 위해 요구하는 투명성의 증거였습니다.
괄호가 많은 원재료명, 첫인상이 틀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동안 “괄호가 많은 제품 = 첨가물 덩어리”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믿었습니다. 미디어에서도 “성분표에 이름 모를 물질이 줄줄이 적혀 있으면 피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접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식품 표시 기준을 찾아 읽고 나서, 제가 가졌던 그 공식이 얼마나 단순무식한 오해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원재료명에 괄호가 등장하는 핵심 이유는 복합원재료(複合原材料) 때문입니다. 복합원재료란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미리 섞거나 가공해서 만든 식품 원료를 가리킵니다. 마요네즈, 된장, 고추장, 카레분말, 소스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원료들은 겉으로는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재료들이 들어 있습니다. 법은 그 내부 구성을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괄호 안에 적으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밀키트 떡볶이 소스에 고추장이 들어갔다면, 고추장[고춧가루, 찹쌀, 메줏가루, 정제소금] 이런 식으로 표시됩니다. 여기서 고추장이 복합원재료이고, 괄호 안의 내용은 그것을 만든 재료입니다. 그 고추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품질 유지를 위한 물질이 사용됐다면 그것도 괄호 안에 함께 적힙니다. 괄호가 두 겹, 세 겹이 되는 건 그 때문입니다. 복잡해 보이는 건 숨기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알려주려는 구조입니다.
식품첨가물 표시,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괄호 안에서 낯선 이름을 발견했을 때 두 번째로 드는 불안이 바로 식품첨가물(食品添加物)입니다. 식품첨가물이란 식품의 제조·가공 과정에서 맛, 색, 보존성, 식감 등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산도조절제, 유화제, 증점제, 보존료 같은 단어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제가 처음 이 이름들을 봤을 때는 “화학 물질이 들어갔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산도조절제(酸度調節劑)란 제품의 pH, 즉 산성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맛과 품질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성분입니다. 유화제(乳化劑)는 물과 기름처럼 원래는 잘 섞이지 않는 성분을 고르게 혼합되도록 돕는 물질입니다. 마요네즈가 분리되지 않고 부드럽게 유지되는 것도 유화제 덕분입니다. 명칭이 생소하다고 무조건 위험 성분으로 몰아붙이는 건, 이름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용이 허가된 식품첨가물은 품목별로 사용 가능한 식품의 종류와 허용 사용량이 엄격하게 지정되어 있습니다. 즉, 이름이 원재료명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안전성 검토를 통과했다는 의미입니다. 원재료명에 보이는 것은 숨겨진 위험이 아니라, 법이 공개하도록 강제한 정보입니다.
원재료명에서 식품첨가물을 확인할 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체크 포인트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재료는 함량이 많은 순서대로 표시되므로, 앞쪽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 괄호 안의 식품첨가물 이름 옆에는 그 용도(예: 산도조절제, 보존료 등)가 함께 표시된 경우가 많습니다. 용도를 보면 왜 들어갔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 복합원재료인지 단일 재료인지를 구분하면 괄호의 의미가 훨씬 명확하게 보입니다.
- 알레르기 유발 물질(난류, 대두, 밀 등)은 별도로 굵게 강조 표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꼭 확인합니다.
- 원재료명 외에 영양성분표를 함께 보면 나트륨, 당류 함량 같은 실질적인 건강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원재료명 제대로 읽기, 이것이 진짜 식품 리터러시입니다
식품 리터러시(Food Literacy)란 식품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해 건강한 식품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정보가 아무리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어도 읽어내는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의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포장지 앞면의 “무첨가”, “100% 순수”라는 문구를 신뢰하면서 정작 뒷면의 원재료명은 복잡하다는 이유로 대충 넘겼습니다. 그런데 앞면 문구는 마케팅이고, 법이 강제하는 진짜 정보는 뒷면에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식품표시 소비자 이해도 조사에 따르면(출처: 한국소비자원), 원재료명 표시를 정확히 이해하는 소비자 비율이 생각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복합원재료 표시 방식에 대한 낮은 이해도였습니다.
보존료(保存料)란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해 제품의 유통 기한을 연장하는 첨가물입니다. 이것이 원재료명에 적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제품이 아닙니다. 보존료 없이 유통 가능한 제품이라면 더 좋겠지만, 사용되었다면 그 사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는 점 자체가 중요합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원재료명이 더 불투명할 수 있다는 역설도 있습니다.
제가 떡볶이 밀키트 사건 이후로 바꾼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원재료명을 보면서 “뭔가 수상하다”는 감정 반응을 먼저 내려놓고, “이게 복합원재료인가, 아니면 단독 첨가물인가”를 먼저 구분하는 겁니다. 그 구분만으로도 눈앞의 긴 원재료명이 훨씬 정돈되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복잡함은 대부분 구성을 투명하게 보여주려는 구조에서 옵니다.
원재료명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을 내려놓는 것은, 가장 정직한 정보가 담긴 페이지를 덮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복합원재료와 식품첨가물이 무엇인지, 괄호가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원재료명은 더 이상 두려운 암호가 아닙니다. 다음번에 마트에서 제품을 고르실 때, 앞면 마케팅 문구보다 뒷면의 원재료명을 먼저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원재료명 표시 읽기 (함량 순서, 복합원재료, 식품첨가물)
E번호 식품첨가물 (E-number, 분류체계, 안전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