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잼을 고르다가 뒷면 라벨을 보고 그냥 내려놓은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읽지도 못할 긴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으면 일단 겁부터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수제 잼을 만들면서, 제가 가졌던 그 공포가 꽤 많은 부분에서 틀려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제 잼이 실패한 날, 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얼마 전 가족 건강을 생각해서 직접 딸기잼을 만들었습니다. 마트 제품 뒷면에 적힌 이름 모를 성분들이 찝찝해서, 오직 유기농 딸기와 설탕만 넣고 정성껏 졸였습니다. 완성했을 때는 꽤 뿌듯했는데, 며칠 뒤 뚜껑을 열어보니 색이 거뭇하게 변해 있었고 상큼함도 많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요리를 잘하는 이웃 언니한테 물어봤더니 돌아온 말이 이랬습니다. “레몬즙 몇 방울 안 넣었어? 그게 색이랑 맛을 잡아주는 거거든.”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레몬즙에 든 성분이 바로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입니다. 아스코르브산이란 흔히 비타민C라고 부르는 성분으로, 산화를 억제해 색과 맛이 변하는 것을 늦춰주는 항산화제(Antioxidant) 역할을 합니다. 항산화제란 식품이 산소와 반응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물질을 통틀어 부르는 말입니다. 제가 집에서 직접 짜 넣은 레몬즙은 ‘착한 천연 재료’로 여기면서, 공장에서 동일한 역할을 위해 넣는 아스코르브산은 ‘위험한 화학 물질’로 선을 그었던 겁니다. 성분은 같은데, 이름이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다르게 판단하고 있었던 거죠.
일반적으로 천연 성분은 안전하고 합성 성분은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꽤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레몬 속 구연산(Citric acid)도, 녹차 속 카테킨(Catechin)도, 고추 속 캡사이신(Capsaicin)도 모두 화학적 구조를 가진 엄연한 화학물질입니다.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화학물질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공포 마케팅이 우리 판단을 얼마나 흐렸나
‘100% 천연’, ‘화학 성분 무첨가’, ‘인공 향료 없음’ 같은 문구를 보면 왠지 더 믿음이 가는 느낌, 다들 아실 겁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런 라벨을 보며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구매를 유도하는 공포 마케팅(Fear Marketing)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공포 마케팅이란 특정 성분이나 제조 방식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부풀려 경쟁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런 마케팅이 장기간 반복되면서 ‘화학물질 = 위험하다’는 등식이 상식처럼 굳어졌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독성학(Toxicology)의 기본 원칙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독성학이란 물질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 분야의 근본 전제는 “모든 물질은 독이 될 수 있고, 독이 아닐 수도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용량이다”라는 것입니다. 16세기 의학자 파라켈수스가 남긴 이 원칙은 지금도 식품 안전 기준의 토대가 됩니다. 물도 단시간에 과도하게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을 일으킬 수 있고, 반대로 적정량의 합성 성분은 오히려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포 마케팅에 오랫동안 노출된 결과, 저는 성분표 이름의 복잡함을 위험의 신호로 읽고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따르면, 식품 첨가물로 허용된 성분은 동물 실험 등을 통해 산출된 무독성량(NOAEL, No Observed Adverse Effect Level) 기반으로 안전 기준치가 설정됩니다. NOAEL이란 실험 대상에서 유해 반응이 관찰되지 않는 최대 용량을 의미하며, 이 수치에 안전 계수를 추가로 적용해 인체 허용량을 결정합니다. 그 기준 안에서 사용되는 첨가물은 이름이 어렵다고 해서 위험한 게 아닙니다.
성분 이름보다 안전성 기준을 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식품 표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제 경험상, 이름이 낯설다는 이유로 무조건 거르는 방식보다는 그 성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허용 기준 안에서 사용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게 훨씬 실용적입니다. 식품 첨가물이 쓰이는 목적은 크게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산화 방지: 아스코르브산(비타민C), 토코페롤처럼 식품이 산소와 반응해 변질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 보존성 향상: 세균이나 곰팡이 번식을 억제해 유통 중 안전성을 유지합니다.
- 식감 및 품질 안정: 유화제(Emulsifier)처럼 물과 기름이 분리되지 않도록 해 식감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 맛과 향 유지: 제조 과정에서 손실되는 맛이나 향을 보완합니다.
- 제조 공정 안정화: 성분들이 균일하게 혼합되도록 도와 품질 편차를 줄입니다.
이 중 어떤 것도 ‘소비자를 속이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제가 레몬즙으로 하려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역할을 더 안정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하는 식품첨가물 기준 및 규격에는 각 성분별 사용 가능 식품 종류와 최대 사용량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허용 기준 자체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첨가물이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진짜 비판해야 할 대상은 화학물질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안전성 검증을 소홀히 한 채 이윤만 좇는 일부 가공 산업의 행태이고, 반대로 소비자의 무지를 이용해 불안을 과장하는 상술입니다. 코덱스 알리멘타리우스(Codex Alimentarius) 기준도 참고할 만한데, 코덱스 알리멘타리우스란 FAO와 WH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 식품 규격 위원회로, 전 세계 식품 안전 기준의 기초가 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이 기준들을 토대로 각국이 허용 범위를 정하는 구조입니다. 더 넓은 국제 기준이 궁금하신 분은 Codex Alimentarius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수제 잼이 색이 변한 날, 저는 생각보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름이 어렵다는 이유로 성분표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 성분이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떤 기준 안에서 쓰이는지를 한 번만 더 들여다보는 습관이 훨씬 실질적인 선택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막연한 공포보다는 냉정하고 구체적인 확인. 건강한 식생활은 거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또는 영양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특정 성분에 대한 의문이나 건강 우려가 있으신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를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