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수제 매실청을 수십 병 담갔다가 지인들에게 민망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병은 너무 시고, 어떤 병엔 곰팡이가 피었으며, 또 어떤 병은 술 냄새가 났습니다. 똑같은 레시피였는데 말이죠. 그 사건 이후로 마트에서 파는 식품의 맛이 1년 내내 한결같다는 사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품질 균일성, 당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해 실패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올해 매실은 작년보다 장마가 길어 수분 함량이 높았고 당도도 완전히 달랐던 겁니다. 저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랐지만, 원재료가 이미 달라져 있었으니 결과가 같을 리 없었죠. 직접 겪어보니 자연에서 온 원재료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뼈저리게 알게 됐습니다.
같은 딸기라도 재배 지역, 수확 시기, 그해 강수량에 따라 맛과 색, 산도가 전부 달라집니다. 이 편차를 그대로 두면 같은 공장에서 나온 제품인데도 소비자가 받아 드는 물건의 품질이 배치(Batch)마다 달라집니다. 배치란 한 번의 생산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제품 묶음을 뜻하는데, 식품 업계에서는 이 배치 간 편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품질 관리의 핵심 과제입니다.
품질 균일성(Quality Uniformity)이란 어떤 날, 어떤 매장에서 사도 소비자가 동일한 맛과 식감을 경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게 무너지는 순간 소비자의 신뢰도 함께 무너집니다. 지난주에 맛있게 마셨던 요구르트가 이번 주에는 묽거나 신맛이 달라졌다면 누구든 의아해하겠죠.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제조사는 원재료 선별부터 제조 공정, 포장, 보관까지 모든 단계를 촘촘히 관리합니다.
많은 분들이 마트 제품의 맛이 늘 똑같은 것을 보며 “공장에서 찍어낸 화학 맛”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도 매실청 사건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실패해보고 나니 그 균일함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자연의 무질서를 과학으로 통제해 낸 결과물인 거였죠.
산화방지제와 안정제, 이름이 낯설다고 나쁜 건 아닙니다
식품 라벨을 들여다보면 낯선 이름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산화방지제, 안정제, 증점제, 산도조절제… 저도 처음엔 이것들을 전부 ‘불필요하게 넣은 화학물질’로 뭉뚱그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역할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산화방지제(Antioxidant)란 식품 속 기름 성분이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 변질되는 것을 늦추는 물질입니다. 이 변질을 산패(酸敗)라고 하는데, 견과류나 과자, 식용유가 오래되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 바로 산패가 진행된 결과입니다. 산화방지제는 그 속도를 늦춰 제품이 유통되는 동안 처음과 비슷한 풍미를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허용된 산화방지제는 종류와 사용량이 법령으로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안정제(Stabilizer)는 음료나 드레싱처럼 여러 성분이 섞인 제품에서 재료가 층을 이루며 분리되는 현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초코우유를 한동안 두면 카카오 성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안정제는 이런 분리를 줄여 소비자가 흔들지 않아도 균일한 상태로 제품을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아이스크림에도 안정제가 들어가는데, 녹았다 다시 얼 때 얼음 결정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증점제(Thickener)는 말 그대로 점도, 즉 걸쭉한 정도를 조절하는 물질입니다. 요구르트가 너무 물처럼 흐르지 않고 적당히 걸쭉한 것, 소스가 재료 위에 고르게 얹히는 것 모두 증점제가 역할을 한 결과입니다. 산도조절제(Acidity Regulator)는 제품의 pH를 일정하게 유지해 맛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는 데 활용됩니다. pH가 변하면 맛은 물론 제품의 색과 질감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음료나 소스류에서 특히 중요하게 쓰입니다.
이 첨가물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산화방지제: 기름 성분의 산패를 늦춰 풍미를 유통 기간 동안 유지
- 안정제: 성분 분리를 억제해 균일한 상태와 식감 보존
- 증점제: 제품 특성에 맞는 점도와 질감을 일정하게 유지
- 산도조절제: pH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맛 변화와 미생물 증식 억제
이름이 낯설고 길어서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물질들은 단순히 색을 예쁘게 만들거나 맛을 속이는 용도가 아닙니다. 자연 원재료의 편차라는 불확실성 안에서도 소비자에게 동일한 품질을 전달하기 위한 과학적 안전장치에 가깝습니다.
첨가물 하나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매실청 사건 이후 식품 제조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된 건, 첨가물은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식품의 품질 균일성은 원재료 선별에서 시작해 살균 기술, 포장, 보관 환경까지 모든 단계가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제가 집에서 매실청을 만들 때 가진 건 레시피와 손뿐이었습니다. 원재료의 수분 함량이나 당도를 측정할 도구도 없었고, 살균 공정도, 산소를 차단하는 포장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작년과 똑같은 결과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던 거죠.
식품 제조업체는 생산이 끝난 뒤에도 색상, 미생물 수, 점도, 수분 함량 등을 항목별로 검사하고,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 출하합니다. 코덱스 알리멘타리우스(Codex Alimentarius)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 식품 기준 체계로, 첨가물 사용 기준을 포함한 식품 안전 규격을 국제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출처: Codex Alimentarius).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제품들은 이런 국제 기준과 국내 법령을 동시에 충족해야 소비자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맥락을 모르면 첨가물 목록을 보는 시선이 불필요하게 불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낯선 이름을 색안경 없이 보려면 그것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어떤 기준 안에서 허용된 것인지를 함께 이해하는 게 훨씬 유용합니다. 자연주의적 환상처럼 ‘첨가물 없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이분법보다, 그 첨가물이 우리 식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따져보는 쪽이 훨씬 현실적인 판단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제 매실청 사건은 저에게 꽤 값진 교훈을 남겼습니다. 자연의 변덕을 통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식품 공학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를 직접 실패를 통해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마트 선반에 늘 같은 맛으로 진열된 제품들을 보며 이제는 그 뒤에 숨은 수많은 관리 과정이 먼저 떠오릅니다. 식품 라벨의 첨가물 목록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왜 거기 있는지’부터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식 홈페이지: https://www.mfds.go.kr
- Codex Alimentarius (FAO/WHO 국제 식품 기준): https://www.fao.org/fao-who-codexalimentariu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