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를 달군 릴스 하나가 저를 가짜뉴스 유포자로 만들었습니다. “유럽에서 금지한 암 유발 색소”라는 자막이 붙은 30초짜리 영상을 별다른 의심 없이 지인들에게 퍼 날랐는데, 며칠 뒤 식품공학 전공 친구에게 팩트체크를 당하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허술하게 속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공포를 파는 숏폼 콘텐츠와 과학적 데이터 사이, 그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공포를 설계하는 알고리즘의 구조
그 영상이 퍼진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올라온 지 하루도 안 돼 댓글이 수천 개 달렸고, 저 역시 사명감에 불타올라 단체 카톡방에 링크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그 영상을 퍼 나른 이유는 내용을 검증해서가 아니라 “유럽 금지”라는 네 글자가 만들어낸 감정적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SNS 알고리즘은 체류 시간과 공유율이 높은 콘텐츠를 우선 노출합니다. 공포와 분노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에 클릭과 공유를 유발하기에 최적화된 소재입니다. 결국 플랫폼 입장에서는 과학적으로 정밀한 영상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영상이 더 높은 수익을 냅니다. 과학이 아니라 광고 모델이 콘텐츠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문제가 되었던 타르 색소 논란도 이 구조 안에서 탄생했습니다. 유럽에서 해당 색소를 아예 퇴출시킨 것이 아니라,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특정 색소에 대해 과잉행동과의 연관 가능성을 검토한 뒤 어린이 식품에 한해 경고 문구 표기 의무를 부과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국가마다 식문화와 평균 섭취량이 다르기 때문에 허용 기준도 다르게 설정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학 행정입니다. “유럽 금지”라는 표현은 이 복잡한 맥락을 전부 삭제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독성학이 말하는 진짜 위험의 기준
식품공학 친구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간단했습니다. “그 실험, 쥐한테 매일 체중의 몇 퍼센트를 먹인 건지 봤어?” 저는 그 숫자를 확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영상에는 없었거든요.
독성학(Toxicology)에서 가장 오래된 원칙은 “독성은 물질이 아니라 용량이 결정한다”는 파라켈수스의 명제입니다. 독성학이란 물질이 생체에 미치는 유해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모든 물질의 안전성은 “얼마나”를 빼고는 논할 수 없습니다. 물도 단시간에 7~10리터를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고, 비타민A도 과잉 섭취하면 간 독성을 일으킵니다.
식품 첨가물 안전성 평가의 핵심 지표는 일일섭취허용량, 즉 ADI(Acceptable Daily Intake)입니다. ADI란 평생 매일 섭취해도 건강에 영향이 없다고 판단되는 양을 뜻하며, 동물 실험에서 아무런 유해 영향이 관찰되지 않은 최대 용량(NOAEL)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설정됩니다. 안전 계수 100을 적용한다는 것은 동물 실험의 독성 기준보다 100배 낮은 양을 인간의 허용치로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속았던 영상 속 실험이 바로 이 NOAEL, 즉 무독성량 근처에서 수행된 극단적 조건의 데이터였습니다. 한국 어린이가 해당 과자를 통해 실제로 섭취하는 색소 양은 ADI의 수백 분의 일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체리피킹(Cherry-picking)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중요합니다. 체리피킹이란 수많은 연구 결과 중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데이터만 골라 인용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논증 오류를 말합니다. 과자 색소 논란 영상이 정확히 이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국제암연구소(IARC)나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공식 입장, 수십 편의 역학 연구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한두 편의 동물 실험 결과만 부각시킨 것입니다. 과학적 합의(Scientific Consensus)란 이처럼 단 하나의 논문이 아니라, 수십 년간 전 세계 연구자들이 반복 검증한 결과들의 집합입니다.
또한 천연 첨가물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인식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연이면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이분법은 오히려 판단을 흐립니다.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도, 독미나리 속 시쿠톡신도 100% 자연에서 옵니다. 반대로 합성 경로로 만들어진 비타민C(아스코르브산)는 천연 비타민C와 화학 구조가 동일합니다. 원료의 출처가 아니라 성분의 특성과 실제 섭취량, 그리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안전성 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식품 정보를 검증하는 실전 루틴
그 사건 이후 저는 식품 관련 정보를 접할 때 공유 버튼에 손이 가기 전에 잠깐 멈추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해보니 진짜 위험한 정보와 과장된 공포를 구분하는 데 5분이면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써보면서 효과를 느낀 검증 루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출처 확인: 해당 주장이 IARC, EFSA,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공인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는지 먼저 검색합니다.
- 섭취량 대입: “이 성분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접했을 때 실험에 사용된 용량과 실제 일상적 섭취량을 비교합니다. 대부분의 공포성 콘텐츠는 이 숫자를 숨깁니다.
- 연구의 범위 확인: 동물 실험 결과인지, 인간 대상 역학 연구인지, 메타분석인지를 구분합니다. 연구 설계에 따라 결론의 신뢰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 반복 검증 여부: 한 편의 연구가 아닌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결론이 나오는지 확인합니다.
- 발행 시점 확인: 10년 전 기준을 현재인 양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식품 규정은 지속적으로 개정되므로 최신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유통 중인 첨가물의 ADI와 실제 한국인 섭취량을 비교한 노출량 평가 결과를 공개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식 사이트에서 품목별 안전성 자료를 직접 조회할 수 있으며, 이 자료를 한 번이라도 찾아본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공포성 콘텐츠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친구에게 지적받기 전까지는 이런 자료가 공개돼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미디어리터러시(Media Literacy), 즉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평가하는 능력은 이제 선택이 아닙니다. 숏폼 플랫폼은 광고 수익을 위해 공포를 상품화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구든 한 번쯤 가짜뉴스의 유포자가 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공포는 빠르게 퍼지고 팩트는 느리게 따라옵니다. 식품 첨가물 콘텐츠를 볼 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공인된 데이터가 있는가”, “한국인의 실제 섭취량 기준으로 ADI를 초과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만 던져도 대부분의 공포성 정보는 걸러집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건강 문제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