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구 식품 (통관 불합격, 식문화 차이, 노출량 평가)

해외 직구 식품이 세관에서 전량 폐기되는 일,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저도 작년에 아이에게 먹이려고 큰맘 먹고 주문한 미국산 유기농 젤리가 통관 불합격 판정을 받아 한 박스도 못 받아본 채 폐기된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국내외 식품 첨가물 기준이 왜 다른지, 어느 쪽이 실제로 더 우리 몸에 맞는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통관 불합격, 억울함에서 깨달음으로

당시 폐기 통보를 받았을 때 솔직히 처음엔 화가 났습니다. 미국 FDA, 즉 미국 식품의약국이 승인한 제품이고, 유기농 인증까지 받은 젤리인데 왜 한국에서만 막느냐 싶었습니다. 국수주의적 과잉 규제라고 생각했고, 당국이 융통성 없이 구는 거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하나씩 파고들면서 제 판단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문제가 된 성분은 미국인의 주된 식사인 육류와 밀가루 식품 기준으로 섭취량을 계산했을 때는 안전 범위 안에 드는 첨가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밥과 반찬 중심인 한국인의 식단 구조에서 같은 성분을 섭취하면 총량이 달라진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노출량 평가(Exposure Assessment)입니다. 노출량 평가란 특정 물질을 인간이 음식, 환경, 생활습관을 통해 실제로 얼마나 흡수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산출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첨가물이 위험한가 안전한가를 판단할 때 성분 자체의 독성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평생 동안 그 성분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섭취하는지를 함께 따집니다. 미국에서 안전하다고 나온 수치가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식품 첨가물 기준은 한국인 평균 섭취량과 식이 패턴을 반영한 독자적인 안전 기준을 바탕으로 설정됩니다. 이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Alimentarius Commission), 즉 FAO와 WHO가 공동 운영하는 국제 식품 기준 기구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서도, 한국인의 실제 밥상을 반영해 보완한 결과입니다.

식문화 차이가 기준을 바꾼다

제가 이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FDA 통과 = 더 안전”이라는 공식을 아무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는 말을 워낙 자주 접하다 보니 그게 상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각국 규제 방식의 ‘철학 차이’를 무시한 오해입니다.

유럽의 식품 규제 기관인 유럽식품안전청(EFSA, European Food Safety Authority)은 사전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전 예방 원칙이란 어떤 물질의 위해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먼저 규제하고 보는 방식입니다. 반면 미국 FDA는 명확한 과학적 위해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합니다. 어느 쪽이 더 엄격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실제로 흥미로운 역전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금지된 특정 보존료가 국내 가공식품에는 허용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문제없이 유통되는 첨가물이 한국 기준에서는 제한되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가 더 ‘안전’한 것이 아니라, 각 나라 국민이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관리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허용된 식품 첨가물에 E번호(E Number)를 부여해 관리합니다. 예를 들어 E300은 비타민C(아스코르브산), E330은 구연산입니다. E번호란 유럽연합이 안전성 심사를 거친 첨가물에 붙이는 고유 코드로, 숫자가 크다고 위험하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해외 직구 제품에서 ‘E000’ 같은 표시를 보고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이건 표기 방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국가별 첨가물 기준이 달라지는 주된 이유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식생활 문화와 주요 섭취 식품의 차이 — 한국인의 밥·김치·장류 중심 식단은 서구의 육류·빵 중심 식단과 특정 성분의 실제 흡수량이 다릅니다.
  2. 노출량 평가 방식의 차이 — 각국이 자국민의 평균 식이 패턴을 기반으로 위해 허용 섭취량을 산출하기 때문에 수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3. 규제 철학의 차이 — 사전 예방 원칙을 우선하는 유럽과, 위해성 입증 후 규제하는 미국의 방식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4. 법령 개정 주기와 최신 연구 반영 속도의 차이 — 같은 연구 결과도 나라마다 규제에 반영되는 시점이 다릅니다.

해외 직구 식품, 이렇게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외 직구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도 직구를 합니다. 다만 그 이후로는 구매 전에 반드시 확인하는 것들이 생겼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해당 제품이 국내 통관 이력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안전나라 사이트(출처: 식품안전나라)에서 수입 식품 부적합 이력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검색이 간단하고 어떤 성분 때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서 꽤 유용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원재료명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특히 일일허용섭취량(ADI, Acceptable Daily Intake)이라는 개념을 알아두면 도움이 됩니다. ADI란 어떤 물질을 평생 매일 섭취해도 건강에 악영향이 없다고 과학적으로 판단된 1일 최대 섭취량을 뜻합니다. 특정 첨가물의 ADI를 알면, 그 제품을 얼마나 자주 먹을 때 문제가 생기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매일 먹일 간식이라면 더욱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기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글 표시 여부도 중요합니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수입 식품은 관련 법령에 따라 한글 표시가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한글 스티커 하나 없이 외국어만 가득한 제품을 병행 수입이나 구매 대행으로 들여오는 경우, 국내 기준 적합 여부를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가볍게 여겼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해외 식품 첨가물 기준이 국내와 다르다는 건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처럼 한 번 폐기 통보를 받아봐야 실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전에 조금만 확인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외국 기준을 통과했으니 더 안전하다”는 막연한 믿음보다, 그 기준이 어떤 식문화와 노출량 평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이해하는 시각이 결국 우리 가족의 건강을 더 잘 지켜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식품 안전 조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참고: –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식 홈페이지: https://www.mfds.go.kr

  • 식품안전나라(수입식품 부적합 이력 조회): https://www.foodsafetykore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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